'바다호랑이' 이지훈 "세월호 아픔 강요 아닌 치유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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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사 故김관홍 모티프…세트장에서 마임으로 시신 수습 연기
"선의로 일한 잠수사에 책임 떠넘긴 과거, 바로잡는 시발점 되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돈을 벌려고 간 현장이었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루에 한 번 밖에 들어가면 안 되는 그 수심의 바다에 많게는 네 번, 다섯 번을 들어갔어요."
"저는 잠수사이기 이전에 국민입니다. 제가 가진 기술로 그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좀 더 빨리, 한 구라도 더 찾아드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세월호 참사 실종자 수색에 참여했던 잠수사 고(故) 김관홍씨가 2015년 9월 국정감사와 12월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한 말이다. 그는 이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듬해 6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수색 작업으로 얻은 잠수병 후유증과 트라우마로 인해 눈을 감기 직전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해경이 구조 작업 당시 발생한 잠수사 사망 사고의 법적 책임을 동료 잠수사들에게로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스트레스는 더 극심해졌다.
김씨는 바다를 떠나 대리운전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갔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냈다. 고양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에도 그는 혼자였다.
그러나 김씨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든 정윤철 감독의 영화 '바다호랑이'는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잠수사 경수(이지훈 분)는 미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학생의 유가족에게서 용서받고 비로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영화 삽입곡 '유윌 네버 워크 얼론'(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마치 그를 향한 응원가처럼 흐른다.
"만약 (현실처럼) 새드 엔딩이었다면 저 자신도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경수는 가족을 만나고 다시 자식들을 안을 수 있게 되잖아요. 이 작품은 과거의 일로 아픔을 겪던 한 인간이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바다호랑이' 주연 배우 이지훈은 지난 19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한 인터뷰에서 "아픔을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도 함께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할 영화"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바다호랑이'는 두바이에 갈 기회를 포기하고 세월호 실종자를 찾으러 진도 팽목항으로 간 경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경수는 물속에 들어가 처음 시신을 수습한 것을 계기로 점점 정신력이 무너진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잠수를 시도하고, 해경에 의해 쫓기다시피 현장을 떠난 뒤에는 폭력적인 성향이 튀어나와 가족과 거리를 둔다.
이지훈은 "그분(김관홍 잠수사)의 아픔이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추측해 (감정을) 따라 한다면 연기가 거짓처럼 보일 것 같았다"며 "이지훈이라는 사람이 만약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며 임했다"고 돌아봤다.
촬영 후에도 이 역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는 그는 "평소 유쾌하고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인데도 (세월호 등) 특정 단어를 듣게 되면 연기하던 때로 돌아가게 돼 계속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른다"고 했다.
경수 역이 매우 감정 소모가 큰 인물이란 것 외에 또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영화 속 배경을 오직 '상상'에만 의존해 연기해야 했다는 점이다.
'바다호랑이'는 연극과 영화를 섞은 듯한 독특한 형식을 내세웠다. 배우들은 공연장 안에 단출하게 지어진 세트에서 거의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세트는 팽목항, 바닷속, 배 위, 경수의 집, 법원, 술집 등으로 시시때때로 바뀐다.
소품을 최소화했고 심지어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에서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이지훈이 마임으로 헤엄쳐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 게 전부다.
이지훈은 "오직 저에게만 의지해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며 "그 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제게만 집중한 것이 오히려 연기에 확신을 줬다.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바다호랑이'는 처음부터 이 같은 형식으로 기획된 작품은 아니다. 당초 100억원대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투자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차선책으로 실험적인 시도를 하게 됐다.
총제작비가 2억원에 불과한 작품이지만, 지난달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작으로 꼽혔고 개봉 전 시사회에서 호평이 쏟아지는 등 관객의 반응은 뜨겁다.
이지훈은 관객의 공통적인 반응이 "소리 내서 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와 잠수사들에 대해) 할 수 있던 것도, 해준 것도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 드시는 것 같아요. 아마 그때 민간인 잠수사가 얼마나 노력했고 처우가 어땠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셨던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이 영화가 선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던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