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열 EBS 사장 "AI는 호재, 교육 콘텐츠에 과감히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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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부터 'AI 콘텐츠' 주 5일 11편씩 정규 편성
"인간 냄새 나는 다큐 확대…글로벌 미디어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
(고양=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혁신을 하려면 눈에 띄게 해야 해요. 인공지능(AI)도 이왕 도입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EBS가 AI 콘텐츠를 주 5일 집중 편성하는 등 대대적인 콘텐츠 혁신에 나선 이유예요."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시 EBS 사옥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김유열 사장은 굳건한 어조로 대대적인 콘텐츠 및 제작구조 개편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자본 잠식 직전의 심각한 재정 위기를 딛고 2024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체질 개선을 이뤄낸 EBS는 올해 'AI 전환'(AX)과 '지역교육 공공성 강화', '콘텐츠 경쟁력 강화'라는 세 가지 경영 목표로 재도약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올해 김 사장의 최대 화두는 단연 'AI'다. 당장 이달 말부터 개편을 실시해 'AI 고전-역사를 바꾼 100책', 'AI 인물 한국사', 'AI 청소년 TV문학관' 등 AI 콘텐츠를 주 5일 11편씩 정규 편성한다.
예컨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AI로 환생시켜 국부론을 직접 강의하도록 하거나, 한국 역사의 기념비적 장면이나 고전 소설 속 장면을 AI로 재현하는 등의 방식이다.
김 사장은 "EBS에 AI는 호재"라며 "기존에 애니메이션이나 인형극 등을 활용해 오던 교육용 콘텐츠들은 현실 인물을 똑같이 구현할 필요가 없어 AI 도입에 매우 유리하다. 제작비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절감하면서도 우주 공간이나 과거 역사 등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유롭게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EBS는 지난해부터 AI 콘텐츠의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엔지니어, 그래픽 디자이너, 카메라맨, PD 등 서로 다른 직군의 제작자 4명에게 각자 생성형 AI만 사용해 1인 콘텐츠를 만들게 한 것이다.
결과는 생각보다 더 성공적이었다. '뤼순에서', '프리다 칼로 2025' 등 기존 콘텐츠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든 AI 콘텐츠들이 각종 미디어 어워즈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호평받은 것이다. 이에 EBS는 올해 본격적으로 AI 콘텐츠를 대폭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김 사장은 "AI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고, 영상 구현 능력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AI 콘텐츠가 이용자들에게 유효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면 국내외를 대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콘텐츠를 제작, 서비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칫 기술 중심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선 양극의 정책을 제시했다.
그는 "교육·지식 콘텐츠는 AI를 과감히 실험하되, 진정성과 실재성이 중요한 다큐멘터리 등은 더 오랜 시간과 예산을 투입해 인간 냄새가 나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며 "다큐멘터리 정신이 훼손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BS는 방송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지식 콘텐츠 허브로의 도약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세계 최대 학술 유통 플랫폼 '프로퀘스트'(ProQuest)와의 입점 계약 체결을 통해 세계 석학 152명의 강의를 담은 EBS 다큐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를 전 세계 2만6천여개 기관에 공급하게 됐고, 이미 동남아 19개 대학과 용인외대부고에 이를 교육 자료로 공급해 성공 사례를 쌓고 있다.
김 사장은 향후 자체 플랫폼을 통한 유료 구독 모델을 넘어,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위대한 수업' 외에도 제2, 제3의 지식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글로벌 수익 구조를 구상 중이다.
그는 "방송은 한 주에 7일, 하루 24시간밖에 송출하지 못한다.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의 혁명은 콘텐츠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무제한 서비스할 수 있다는 데 있다"며 "이제 EBS는 단순한 방송사를 넘어 미디어 시스템, 즉 'EMS'(Educational Media System)로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국내 음악산업 육성 효과를 인정받아 글로벌 기업 구글로부터 300억 원을 지원받은 EBS 대표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은 다음 달부터 라이브 공연과 신인 뮤지션 발굴을 재개한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교육으로도 발을 넓힌다. 연말까지 지역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를 전국 100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 EBS는 전사적인 비상경영 체제 속 임직원들의 고통 분담과 수익 다각화에 힘입어 2024년 16억원, 2025년 4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김 사장은 "흑자 전환은 제작비, 인건비 절감 등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감내한 덕분"이라며 "이를 통해 170억원 정도의 경비를 절감했고 유튜브 수익 증대, 구독 서비스, AI 데이터 판매, 출판 등 다각화된 수익 모델을 통해 약 150억원의 신규 수익을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쇄신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갈등도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지난해 '노사 상생 선언' 이후 주 4.5일제를 도입하며 조직 결속을 다지고 있다. 임금과 제작비 역시 점진적으로 원상 복구 중이고, 올해는 신규 채용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첫 내부 출신 사장으로 취임한 김 사장은 지난해 3년의 임기를 모두 마쳤다. 하지만 법원이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신임 사장 임명 처분 효력을 정지하면서 4년째 사장직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새로운 혁신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사장은 "물론 시간이 촉박하다. 하지만 지금의 전환기는 중차대하기에 리더십 교체기라고 머뭇거릴 수는 없다"며 "이럴 때일수록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위성방송과 인터넷 시대에도 도약했던 EBS가 AI 시대에도 한 차례 더 도약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