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처럼 진화한 좀비·매력적 빌런…500만 치닫는 연상호 '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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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보다 빠르게 400만 돌파…"게임처럼 느껴지는 액션물"
차별화된 세계관·입체적 캐릭터 강점…연이은 휴일로 초반 흥행몰이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박원희 기자 = '부산행'(2016)과 '반도'(2020)를 잇는 연상호 감독의 새 좀비 영화 '군체'가 흥행하며 5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군체'는 개봉 14일째인 지난 3일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왕과 사는 남자'보다도 하루 빠른 속도를 보였다.
'왕과 사는 남자'가 1천600만 관객을 넘기며 역대 국내 개봉작 중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을 동원한 가운데 '군체'의 흥행 전망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집단지성 공유하는 좀비들…'똑똑하게 진화' 신선한 설정
'군체'가 관객들의 호응을 얻는 이유로는 기존 좀비 영화와 차별화된 설정이 꼽힌다.
감염자들이 피를 토하며 좀비로 변하고, 사람들을 물어뜯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설정은 기존 좀비물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지만, '진화하는 좀비'라는 신선함을 더했다.
'군체' 속 좀비들은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집단지성을 형성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하게 진화한다.
처음에는 지능 수준이 바닥을 기어 다니며 광고판 속 사람 형상만 보고도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는 정도에 머물다가, 점차 정교한 판단력을 갖추고 인간을 속일 정도로 똑똑해진다.
이 과정은 좀비들이 일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드는, 이른바 '업데이트'를 통해 이뤄진다.
기존의 좀비물에선 볼 수 없던 '업데이트' 장면이나, 이를 통해 생존자들을 점차 궁지로 몰아가는 모습은 신선함과 공포를 동시에 선사한다.
집단지성을 가진 좀비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연상호 감독은 앞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은 소수 의견을 낼 수 없는 보편적 사고의 총합이고, 개별성은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며 지성을 공유하는 좀비와 개별성을 가진 인간의 대비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들의 행동 패턴이 단순히 좀비를 피해 도망치는 방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 요소다.
생명공학자와 대학교수, 경찰, 보안관리인, 학생 등으로 이뤄진 생존자 그룹은 '진화하는 좀비'의 특성을 관찰하며 위기마다 새로운 타개책을 찾아 나선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위협이 등장하고 이를 깨부수는 구조는 마치 게임에서 레벨을 깨나가는 듯한 재미를 준다는 평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군체'는 관객들이 게임처럼 느끼는 액션물"이라며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점 등 게임과 비슷한 요소가 오락적인 만족도를 높여준다"고 짚었다.
◇ 인간도 좀비도 기억에 남는다…입체적 캐릭터의 힘
'군체'의 또 다른 강점은 좀비와 인간 모두를 선명한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기존 좀비 영화의 감염자들이 익명의 군중으로 소비됐다면, '군체'는 개별 감염자들의 얼굴과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또 관객들은 마치 반려동물이 훈련받는 과정을 보듯이, 여러 좀비 무리 중 하나가 특정 깨달음을 얻고 이를 집단 모두에게 공유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주연 배우 전지현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본인의 사유를 AI에 양도하는 모습을 감독님께서 좀비물 안에 비판적인 시선으로 재치 있게 담아내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맥락을 이해하면서 이를 집단에 공유하는 모습은 좀비들을 각각의 개인으로까지 알아보게 만든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이번만큼 좀비 한 명 한 명이 부각됐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며 "좀비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좀비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 특유의 개성 강한 인물 설계도 돋보인다.
좀비 영화인데도 최대 빌런(악당)으로는 좀비가 아니라 구교환이 연기한 생물학자 서영철이 꼽힌다.
서영철은 대규모 감염사태를 일으킨 인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을 현생 인류보다 더 진화한 신인류라고 믿는다.
'군체'가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제79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초청작으로 처음 공개됐을 당시 일부 외신은 서영철의 빌런 캐릭터가 '조커'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생존자 그룹을 이끄는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 분)이 전남편 한규성(고수)과 그의 아내 공설희(신현빈)와 각각 맺는 관계도 인간성의 여러 측면을 떠올리게 한다.
좀비 사태 앞에서 같은 생존자 그룹에 속하게 된 어린 연인들과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등 인물의 관계도 흥미로운 요소다.
◇ 천만 전망은 일러…초반 기대감과 연이은 휴일 영향도
다만 '군체'가 '왕과 사는 남자'보다 빠른 시간에 400만 관객까지 도달한 것은 연이은 휴일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군체'는 지난달 21일 개봉한 직후 부처님오신날을 낀 긴 주말(22~25일)을 맞이했다. 나흘간 180만명이 넘는 관객이 '군체'를 관람하며 개봉 5일 차에 200만명을 넘겼다.
지난 3일 지방선거 휴일에도 하루 만에 33만명이 관람했다.
실제 관람객 평가를 토대로 한 CGV 에그지수는 89%로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왕과 사는 남자'의 97%보다는 낮은 것도 사실이다.
윤성은 평론가는 "확실히 에그지수 같은 수치가 ('왕과 사는 남자'보다) 더 떨어진다"며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라는 측면에서 기대감이 있고, 휴일 특수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