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케냐 MZ는 '화장한 남자 아이돌' 별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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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연합뉴스 우분투콘텐츠팀장
필자는 지난 8월 초 케냐 나이로비 국립대학에서 열린 한반도와 아프리카 관련 세계코리아포럼에 취재차 참석한 바 있다.
2박 3일간 아침 일찍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세미나가 이어지는 강행군 일정이었다.
행사를 다 마치고 케냐 현지 여성 MZ세대를 만나볼 기회가 생겼다.
김수원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가 '왜 동아프리카에는 한류가 덜 인기 있는가'라는 현지 연구 주제와 관련해 이들과 집단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는데 동행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참고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 서부와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지만,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상대적으로 무덤덤했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핼러윈 물품 구매 사이트에서는 오징어 게임 복장이 가장 많이 검색되었다지만, 케냐가 속한 동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현지 젊은 친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좋은 기회라서 당일 출국 예정이었지만 흔쾌히 인터뷰 자리에 동행했다.
20, 30대 여성 5명이 일하는 K-뷰티 관계사의 현지 사무실에서 책상에 둘러앉아 면담을 진행했다.
대부분 흑인이고 한 명은 중국계 아버지와 케냐 현지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20대 청년도 있었다.
이 자리는 K-팝 등 한류에 대한 현지 젊은 층의 얘기를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최근 온라인상에만 등장하는 버추얼(가상) 스타들에 대한 관심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K-팝 남자 아이돌과 관련, 참석자들의 남성관 얘기를 들으면서 젠더 개념에 대한 생각이 아프리카는 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K팝 스타들이 잘생기고 좋아할 만하며 그 노래를 정말 즐긴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나 굳이 그런 한국 남성과 사귀거나 결혼하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으로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 듯했다.
현재 사귀는 남성이 백인이라는 친구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돈 많은 이성이면 좋다는 얘기도 했다.
특히 한국 남자 아이돌의 경우 귀엽고 얼굴 화장도 하는 측면을 케냐 현지 젊은 여성들은 반기지만, 현지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케냐 젊은 남성들은 아직 전통적 젠더 개념이 강해서 육체적으로 남성적 근육미를 멋지게 보고, 스스로 장차 가정을 책임을 질 가장으로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 참석자는 설명했다.
그래서 아이돌 스타처럼 너무 귀엽거나 화장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남성상에 대한 현지 젊은 여성의 기대치도 대체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동성애에 대한 관념도 아프리카는 매우 보수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 여성은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남성상이나 여성상을 많이 흡수하며 자라기 때문에 나중에 성소수자를 접해서도 기존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젊은 남성층까지 팬심을 확대하려면 마냥 잘 생기고 얼굴과 피부가 뽀얀 아이돌 스타만 선보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팬들을 겨냥한다고 해서 다른 지역권 겨냥 아이돌 구성처럼 무작정 흑인을 영입하거나 버추얼 아이돌에서 일부러 얼굴색을 흑인 피부색 톤으로 조절하면서까지 K-팝 본래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도 이들은 조언했다.
K-팝과 한류의 진정한 블루오션은 아프리카 대륙이다.
14억∼15억 명 인구의 아프리카는 가장 나이 든 사람부터 갓난아기까지 줄을 세웠을 때 그 중간에 오는 나이대가 19세 정도이기 때문이다. 30세 이하 젊은 층 인구 비율도 거의 70%나 된다.
필자가 남아공에서 특파원(2020∼2023년)으로 있을 당시 한국문화원이 수도 프리토리아에 세워졌는데 한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팬데믹 당시 출입국 봉쇄로 한국과 교류가 끊겼어도 자체적으로 현지인 K-팝 강사를 세워 배우고 경연할 정도였다.
록다운(봉쇄령)이 풀린 이후 이름난 K-팝 아이돌 대신 국내의 한 국악 강사가 와도 대스타처럼 환호했다. 이러니 한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가수라도 남아공에 와서 공연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프로비츠를 비롯해 아프리카 음악과 리듬은 재즈와 랩, R&B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서양 팝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프리카 리듬에는 정박자가 아닌 독특한 것도 있다고 한다.
이는 K-팝이 글로벌하게 뻗어나가는 음악적 자양분을 아프리카가 풍부하게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한류와 아프리카 음악의 교류는 일방적 통행이 아니라 우리도 배울 것이 많이 있는 쌍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아프리카 MZ 세대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음악 등을 통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다양한 아프리카 현지 맞춤형 K-팝 전략을 마련하면 한류의 장래가 더 밝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수원 교수는 다만 "아프리카를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지역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한류 진출전략도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지역별 정서와 문화를 감안한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실제로 김교수의 현지 인터뷰 조사에 따르면 케냐와 달리 남아공의 경우 서구의 영화에서 보이는 남성성뿐 아니라 화장을 한 남성성의 수용 등과 관련, 서구의 문화 콘텐츠에서 볼 수 없는 '다름'을 한국 문화콘텐츠의 매력으로 손꼽았다.
아프리카에 한류가 진출하되 지역별로 다른 현지 문화에 따라 맞춤형으로 접근할 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 김성진 팀장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 우분투콘텐츠팀장, 서울대 영문과, KDI 국제정책대학원 MBA,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방문연구원, 연합뉴스 요하네스버그특파원·디지털콘텐츠 부국장 역임, 저서 '아프리카의 미래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