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부른 70년대 인기가수 옥희 암 투병 끝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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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3세…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과 결별 16년 만에 재결합 화제
"출중한 외모에 가창력 갖춰 큰 인기"…올해 투병 중 '가요무대' 출연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히트곡 '나는 몰라요'와 '이웃사촌' 등으로 1970년대 인기를 누린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가 20일 오후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장미화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옥희가 오늘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신장암으로 눈을 감았다"며 "오늘 오후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마지막으로 면회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세상을 떠났다고 연락을 받았다. 옥희의 가족들이 마지막을 지켰다"고 말하며 애통해했다.
옥희는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해 해외 활동을 펼치고, 귀국 후 솔로로 전향해 큰 사랑을 받은 가수다.
고인은 한국전쟁 도중인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옥희의 부모는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휴전 후 상경한 옥희는 배화여중 3학년 때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고모의 소개로 가수 현미를 만난 것을 계기로, 미8군쇼 공급 업체에서 오디션을 보고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68년 5인조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해 홍콩,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활발한 공연을 펼쳤다.
옥희는 지난 2019년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이 시기를 회고하며 "저희는 세계를 누비던 K팝의 원조였다"고 돌아봤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옥희와 서울시스터즈는 마침내 '꿈의 무대'였던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해 현지 대형 무대에 서는 등 활약했다"며 "외국에서의 활동명은 귀여운 고양이 같다는 데서 붙여진 '키티김'(Kitty Kim)이었고, 별명은 본인의 이름을 딴 '오키토키'였다"고 설명했다.
옥희는 귀국 후 1974년 '나는 몰라요'로 솔로로 데뷔해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 직후부터 힘 있는 가창력과 서정성을 동시에 갖춘 가수로 주목받았고, 유명 작곡가 김희갑이 작곡하고 김중순이 작사한 '나는 몰라요'는 그에게 MBC '10대 가수상'을 안겨줬다.
옥희는 이후 '눈으로만 말해요'(1975년), '어디에 있을 것 같아'(1976년), '아 그날이'(1976년), '이웃사촌'(1977년), '두 손을 잡아요'(1977년)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고인은 음악 활동 외에도 1970년대 후반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과의 염문으로 세간의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는 1978년 홍수환과 진지하게 교제하며 딸을 얻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결별하고 각자의 길을 걸었다. 만남과 출산으로 가수 생활을 잠시 멈췄던 옥희는 1981년 '아내의 일기'와 '옥희의 꿈' 등을 내며 활동을 재개했다.
옥희와 홍수환은 결별 이후 약 16년 만인 1995년 재결합해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2000년에는 함께 '옥희 & 홍수환 찬양 앨범'을 내거나 자선음악회 무대에 서는 등 부부애를 과시했다.
옥희는 이후로도 '소설 같은 사랑'(2003년), '돈 때문에'(2007년), '인생 열차'(2017년) 등을 내며 음악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지난해 신장암을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이보다 1년 전인 2024년 발표한 '고마운 사랑'과 음악 동인 예우회의 '전설을 노래하다' 음반에 실린 '인생 열차'가 고인이 남긴 마지막 노래가 됐다.
옥희는 그러나 투병 중이던 올해 3월에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정열의 꽃'을 열창하는 등 음악 활동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박성서 평론가는 "옥희는 출중한 외모에 폭발적인 가창력을 갖춘 데다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담아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히트곡 제목 '이웃사촌'처럼 밝고 친근한 이미지와 노래를 향한 꺾이지 않은 그의 열정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홍수환과의 사이에 아들 1명과 딸 1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며,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