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별세…들국화 최성원 부친상(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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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정서 담은 가곡 등 480여 편 작곡…"조선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써"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국민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최영섭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유족에 따르면 최영섭은 노환으로 인해 6일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날 오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인 록그룹 들국화의 베이시스트 겸 대중음악 작곡가 최성원은 연합뉴스에 "부친이 특별히 남기신 말은 없었다"며 "지병은 없었고 노환으로 몸이 쇠하신 상태였다"고 말했다.
고인은 1929년 경기 강화군에서 출생했으며 서울대 작곡과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대학원 지휘과를 졸업했다. 이후 한양대 음악학과 교수, 중앙대 음악교육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고인이 2010년 남긴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구술채록에 따르면 최영섭은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가대 활동과 오르간 연주를 하며 음악을 접했다.
이후 인천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밴드부에 들어가 플루트와 트럼펫 등의 악기를 다뤘다. 최영섭은 "이 때가 본격적인 음악 경험을 시작한 무렵"이라고 회고했다.
해방 후 경복중학교로 전학한 그는 훗날 숙명여대 피아노과 교수가 된 선배 구연소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작곡과 과장을 맡고 있던 임동혁에게 작곡을 배웠다.
비싼 교재비에 벌벌 떨기도 하고 엄한 선생의 강습에 울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첫 가곡 '그리운 옛 봄'(1947년)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최영섭은 김성태 교수 밑에서 작곡을 배우며 박목월 시인 등의 문학 강의를 들었다.
그는 6·25 전쟁 발발 이후에는 기독교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 지휘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으며 결혼 후 가곡집 '소라'(1954)를 펴냈다. '소라'는 조병화와 조지훈, 김영랑 등 우리 시인의 시에 가락을 붙인 곡들로 구성됐다. 1957년에는 인천애협교향악단을 창설했다.
1961년 인천에 내려와 있던 시인 한상억의 시 '그리운 금강산'을 들은 최영섭은 "듣는 자리에서 멜로디가 거의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노래를 만들기로 결정한 다음 날 새벽에 완성된 '그리운 금강산'은 KBS 프로그램 '이 주일의 노래'로 채택됐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남북 분단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이 곡은 플라시도 도밍고, 조수미, 안젤라 게오르규, 볼쇼이 합창단 등 세계 정상급 성악가와 단체가 공연 또는 독집 앨범에서 부르면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최영섭은 1995년 광복 50주년에는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고난과 분단, 통일에 대한 염원 등을 그려낸 칸타타 '오! 사랑하는 나의 조국'을 작곡했다. 아르코예술기록원에 따르면 그가 평생 만든 가곡·기악곡·합창곡·오페라 등은 480여편에 달하며 편곡한 국내외 가곡은 1천500여곡이다.
그는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최영섭은 작품에 한국적 정서를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구술채록에서 "기악곡을 쓸 때 내 마음가짐은 '나는 조선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묻히게 될 것을 영광으로 안다"며 "많지 않지만 향토적으로 작곡하려고 애쓴 작품들이 이 땅에 영원히 남을 것을 생각할 때 무한히 기쁘다"고 했다.
고인은 생전 아들 최성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아들이 클래식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몰래 기타를 연습하고 있더라"며 최성원의 대표곡 '제주도의 푸른 밤'에 대해 "내 영향을 받아서인지 가곡의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최성원은 들국화의 무대에서 부친이 작곡한 '그리운 금강산'을 선보이기도 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7월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