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안 썼다고 살해된 이란 여성…딸들의 분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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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잡 시위 배경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칸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라술로프 감독, 정부 감시 피해 촬영…징역 8년형에 배우들과 유럽 망명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자유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무엇을 입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지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상은 억압 속에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이란의 모든 영화인과 함께 받는 것입니다."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언 심플 액시던트'로 최근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남긴 수상 소감이다.

    약 1년 전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같은 자리에 선 파나히 감독의 동료 모함마드 라술로프 감독도 비슷한 소회를 밝혔다.

    "이란의 영화인들이 언젠가는 (정부의) 강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이들은 검열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작업을 이어가면서 어려움을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두 감독은 이란의 정치·사회 문제를 파고든 작품을 자주 선보인 반체제 예술가로 정치적 연대를 이어왔다. 2010년에는 함께 반정부 성향의 영화를 촬영하다 나란히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파나히가 그랬듯 라술로프도 정부의 눈을 피해 첩보 작전을 펼치듯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준비했다.

    가짜 시놉시스를 만들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배우들의 성향을 살핀 뒤 캐스팅을 해나갔다. 촬영은 대부분 실내에서 진행했고, 외부에서 찍을 때는 정부에 협조적인 국영방송 프로그램인 것처럼 위장했다. 가택연금 상태였던 라술로프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원격으로 스태프에게 지시를 내렸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진 2022년 테헤란을 배경으로 한다.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 분)과 사나(세타레 말레키) 자매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지만, 처참하고 격렬했던 시위 당시 영상을 삽입해 리얼리티를 살렸다.

    자매는 다정한 아버지 이만(미사그 자레)과 친구 같은 어머니 나즈메(소헤일라 골레스타니) 아래에서 구김살 없이 컸다. 호화로운 집에 살며 돈 걱정 한번 한 적 없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이상하긴 해도 큰 관심을 두진 않는다.

    이만은 20년 넘게 반정부 인사의 정보를 수집하는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혁명재판소의 수사판사로 승진하게 되고 "딸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자매에게 자기 직업을 말해준다.

    어머니 나즈메는 고위직에 앉은 남편에게 걸림돌이 될까 딸들을 단속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한 당부는 히잡을 단단히 쓰라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그가 내건 금지사항이다.

    레즈반과 사나는 어머니의 구속을 답답해하면서도 적응해 나가려 한다. 그러나 뉴스에서 또래 여성인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 잡혀갔다가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을 본 뒤 차츰 변화를 겪는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미니의 죽음이 기폭제가 돼 이란 전역에는 시위가 번진다. 거리에서 일어난 격변은 가정에까지 틈입한다. 어머니와 자매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뚜렷하게 갈린다. 급기야 나즈메가 시위 속에 섞여 있다 산탄총을 맞고 집에 숨어든 레즈반의 친구를 내쫓으며 갈등은 증폭된다.

    아버지 이만의 권총이 갑자기 사라진 뒤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만은 딸 중 하나가 총을 훔쳐 갔다고 확신해 마치 수사관처럼 이들을 심문한다. 정치·사상범 수사의 귀재라 불리는 동료 앞에 세 모녀를 데려다 놓고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이때부터 인물 간 대결 구도는 어머니 대 자매에서 아버지 대 세 모녀로 바뀐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각기 다른 삶을 살던 평범한 이들이 연대했던 시위 속 한 장면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딸 바보'였던 아버지가 광기에 휩싸여 종교경찰처럼 변해가는 모습은 섬뜩함을 안긴다. 특히 감금과 납치, 추격이 펼쳐지는 극 후반부에선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물보다 더 큰 긴장감을 자아낸다. 의심 없는 애국심과 비뚤어진 충성심, 권력욕이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내고 한 가정, 나아가 사회를 망가뜨리는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라술로프는 이 가족의 파국은 되돌릴 순 없어도 이란 사회는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비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해피엔딩으로도 느껴지는 결말에는 그의 이런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영화 제목에도 그의 염원이 담겼다. 새로운 씨앗이 땅에 뿌리 내리면 숙주였던 나무를 휘감아 죽인 후 비로소 홀로서는 보리수의 생태적 습성에서 따온 제목이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젊은 세대에게 건네는 응원과 기대를 암시하는 제목으로 해석된다.

    라술로프는 영화 작업 막바지쯤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했다는 명목으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주연 배우들과 함께 유럽으로 망명한 그는 칸영화제에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상영했고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영화는 칸영화제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에서 최고점인 3.4점을 기록하는 등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심사위원 특별상의 영예도 안았다. 타임, 버라이어티, 가디언, 인디와이어 등 해외 주요 매체는 2024년 최고의 영화로 이 작품을 꼽았다.

    6월 3일 개봉. 167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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