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 헤게모니에 도전장…투자 지형 바꾼 '오징어게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대단원의 막을 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히트를 넘어 세계 콘텐츠 역사에 전환점으로 남았다.

오징어게임'은 비영어 콘텐츠로 오랜 세월 서구가 독점해온 글로벌 문화 헤게모니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밀었고, 압도적 성공을 통해 그 헤게모니에 균열을 냈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들의 한국 콘텐츠 투자를 대폭 상승시켰으며 드라마 외 다양한 파생 비즈니스 창출과 플랫폼 고도화도 불러왔다.

◇ 시즌3도 93개국 1위…한국 콘텐츠 수용성의 극적 변화

29일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징어게임' 시즌3은 93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총점 개념의 오버뷰(overview)는 930점으로 2위 '워터프론트'(676점)를 크게 앞지르며 내용적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압도적인 주목도를 증명했다.

시즌별로 보면 2021년 시즌1은 첫 28일 동안 1억4천200만 가구가 시청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 기록을 세웠다. 당시 94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고 최종 약 22억 시간의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률을 유지 중이다.

2024년 시즌2도 첫 주 누적 시청 시간이 약 4억8천760만시간을 기록했고 93개국에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또 넷플릭스 공식 '모스트 뷰' 집계에서 최종적으로 1억9천260만뷰 이상을 기록, 넷플릭스 역대 3위권에 올랐다.

소셜미디어에서도 넷플릭스 소유 글로벌 소셜 임프레션이 195억 건을 넘고, 틱톡 대표 영상은 누적 조회수 1억 2천860만 뷰를 기록, 큰 파급력을 보였다.

패럿애널리틱스가 분석한 '한국 콘텐츠 공급 트렌드'(2015~2024년) 데이터는 '오징어게임'이 만든 변화의 규모를 잘 보여준다.

2015~2020년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던 한국 콘텐츠 공급지수는 2021년 '오징어게임' 이후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21년을 기점으로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거의 곱절 상승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수요 역시 5배 증가했다.

또한 패럿애널리틱스의 언어별 수요 점유율 데이터를 보면 2018년 77%를 차지했던 영어 콘텐츠의 비중은 2024년 58%까지 줄었다. 반면 비영어 콘텐츠는 23%에서 42%까지 늘어 50% 달성을 목전에 뒀다.

37개 언어로 자막이 제공되고 13개 언어로 더빙된 '오징어게임'의 영향이 컸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한국 콘텐츠 수용성' 지표에서도 2017~2020년까지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지만 2021년 '오징어게임' 출시 이후에는 급상승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오징어게임' 이후 수용성은 70% 증가했는데,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극적으로 개선됐음을 의미한다.

◇ 글로벌 공룡들의 투자와 비즈니스 파생 가속화

'오징어게임' 성공은 한국 콘텐츠 전반의 글로벌 진출과 투자를 가속했다.

넷플릭스는 2021년 한국 콘텐츠에 5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실제로 투자 규모를 꾸준히 확대해왔다. 2023~2026년 총 25억 달러 투자 계획이 발표됐고 지난해 기준 연간 투자액이 7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파주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작 스튜디오를 건설하고 있으며, 올해 완공 예정이다. 이 스튜디오는 단순히 한국 시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콘텐츠 제작 허브 역할을 할 예정이다.

디즈니플러스도 2021년 한국 진출과 함께 '무빙', '커넥트' 등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넷플릭스와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아마존프라임비디오와 애플TV+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아마존은 CJ ENM 등 한국 스튜디오와 협력해 혁신적인 콘텐츠 개발을 시도하고 있으며, 애플은 높은 제작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다양한 파생 비즈니스도 창출했다.

리얼리티 게임 쇼 '오징어게임: 더 챌린지'는 456명의 참가자가 456만 달러의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형식으로 제작돼 주목받았다.

머천다이징(IP 굿즈) 또한 새로운 수익원이 됐다. 녹색 체육복과 분홍색 가드 유니폼 등 의상, 소품, 달고나 사탕 등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GS25가 스낵, 문구, 생활용품 등 40여 종의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체험형 콘텐츠 시장도 활성화했다. 넷플릭스는 뉴욕, 런던, 마드리드, 시드니 등에 '오징어게임: 더 익스피리언스' 체험 시설을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작품을 모티브로 한 모바일 게임도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3주 만에 1천10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게임 중 다섯 번째로 사랑받은 게임이 됐다.

아울러 '오징어게임' 시리즈 성공 후 고품질 콘텐츠 수요가 증가하면서 4K·8K 등 고해상도 스트리밍과 돌비 애트모스 등 고음질 오디오 기술이 확산했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개인화 추천 서비스 고도화와 VR·AR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 개발도 활발해졌다.

◇ '제2의 오겜'은 가능할까…"IP 생태계 강화와 지원이 과제"

미디어연구소 K엔터테크허브 리포트 '오징어게임: 모먼트'에 따르면 '오징어게임' 성공 요인은 보편적 주제, 독창적 설정, 뛰어난 연출과 연기, 글로벌 플랫폼의 지원으로 요약된다.

이후에도 많은 성공작이 나왔지만 아직 '오징어게임'을 넘어선 작품은 없다. 업계에서도 '제2의 오징어게임' 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물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창작 환경의 다양성 확보, 신진 크리에이터 발굴과 육성, 원천 IP의 체계적 개발, 엔터테크 혁신과의 결합, 글로벌 협업 체계 구축 등이 꼽힌다.

정부는 2030년 한국을 '글로벌 콘텐츠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체적으로는 콘텐츠 수출액 500억달러 달성, 글로벌 콘텐츠 시장 점유율 10%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IP 생태계 강화, 제작 인프라 고도화, 글로벌 진출 지원 등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는 웹툰 영상화, K푸드 콘텐츠, 버추얼 콘텐츠, 교육 콘텐츠 등이 꼽힌다.

K엔터테크허브는 "단순한 성공 복제가 아닌 창의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통해 제2, 제3의 오징어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과제"라며 "한국 콘텐츠 산업과 스트리밍 업계의 선택과 혁신이 그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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