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북숭이 괴물 눈으로 본 인간 세계…영화 '사스콰치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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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없이 전설 속 동물 '빅풋' 연기한 괴작…아리 애스터 총괄 프로듀서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대체 제시 아이젠버그는 언제 나오는 거야?"
데이비드·네이선 젤너 형제 감독의 영화 '사스콰치 선셋'을 보던 미국 관객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젠버그가 이 작품에 출연한다고 들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서였다.
사실 아이젠버그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등장한다. 털북숭이 괴물 사스콰치의 외형을 하고 연기한 탓에 그를 관객이 알아보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빅풋'(Bigfoot)이라고도 불리는 사스콰치는 장신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북미의 전설 속 동물이다. 인간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깊은 숲에 숨어 산다고 전해 내려오지만,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스콰치 선셋'은 수컷 세 마리와 암컷 한 마리로 이뤄진 사스콰치 가족의 사계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미드 소마'(2019), '보 이즈 어프레이드'(2023) 등 괴작(怪作)으로 유명한 아리 애스터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아이젠버그를 비롯한 배우진은 모두 특수분장으로 원래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네이선 젤너 감독도 우두머리 수컷 역으로 출연해 몸소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에는 대사도 한 줄 없다. "우어어", "아악", "우웅" 하는 울음소리로 사스콰치들끼리만 의사소통한다. 발을 구르고 팔을 허공에 휘젓는 제스처는 감정 표현의 수단이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이들의 삶은 야만적이고 역겹다. 본능에 따라 아무 곳에서나 짝짓기나 배변을 하고 이름 모를 열매와 버섯, 벌레를 먹는 모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들의 외모가 인간과 비슷해 마치 치부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스콰치 가족이 아스팔트 도로 등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는 중반부부터 서서히 감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인간 관객의 시각으로 사스콰치를 봤다면 이때부턴 사스콰치가 관찰하는 인간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스콰치에게 문명사회는 너무나 이상하다. 멀쩡한 나무를 잘라 누군가를 깔려 죽게 하고 울창한 숲을 태워 버린다.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렸는데도 공장에서 만든 가공식품을 섭취하고, 캠핑을 와서도 아름다운 새소리 대신 시끄러운 록을 듣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스콰치들의 가족애다. 인간처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해도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한 장면 한 장면에서 느껴진다. 아무리 의견이 맞지 않아도 폭력을 쓰는 법이 없다. 생존을 위한 목적이 아니면 결코 살생도 하지 않는다. 사스콰치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적나라한 사스콰치의 묘사와 일부 엽기적인 장면으로 인해 이 작품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그러나 실험적 작품에 단련된 관객이라면 일반 영화에서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깊은 감동을 느낄 것 같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영화. 대사가 없어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얼굴 표정 없이도 온갖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는 평을 들었다.
7월 2일 개봉. 88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