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인물들의 예측 불가 스토리…영화 '미세리코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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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죽이고 도망치지 않는 남자…카예 뒤 시네마 선정 작년 최고 영화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프랑스 툴루즈에 사는 청년 제레미(펠릭스 키실 분)는 과거 일했던 빵집 사장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고향을 찾는다.
유럽 특유의 예스러운 멋이 가득해 보여도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주민들 역시 무언가 숨기는 듯하고, 제레미가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눈치다.
빵집 사장의 아들이자 제레미의 옛 친구인 뱅상은 특히 그를 경계한다. 제레미에게 언제 툴루즈로 돌아갈 것인지 캐묻고 절친한 친구인 왈테르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아니꼬워한다.
뱅상의 어머니 마르틴(카트린 프로)은 유일하게 제레미를 반긴다. 제리미가 이 숨 막히는 마을에 기댈 곳이 한 군데는 있겠구나 하고 안심하던 찰나 기대는 와르르 무너진다. 남편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함께 보던 마르틴이 제레미에게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우리 그이 계속 사랑했어?"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대사지만 제레미는 덤덤히 대답한다.
"네. 지울 수가 없어요."
알랭 기로디 감독의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자비)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과 이들의 기묘한 관계를 다룬 블랙코미디 스릴러 영화다. 퀴어 영화를 꾸준히 선보여온 알랭 기로디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에도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기로디 감독에게 칸국제영화제 퀴어황금종려상을 안긴 '호수의 이방인'(2016)처럼 '미세리코르디아'도 심리 스릴러 성격이 강하다.
초반부터 심상치 않던 분위기는 제레미가 얼떨결에 뱅상을 살해하면서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제레미는 숲속에 그를 유기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마르틴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마르틴은 제레미를 추궁한다. 제레미는 나름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설프게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가 요리조리 피해 가다 결국 경찰에게 붙잡히는 전개가 예상된다. 그러나 스토리는 관객의 추측을 보란 듯이 비껴간다. 이 영화에는 일반적이라 할 만한 캐릭터가 한 명도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마을에서 도망치지 않고 마르틴의 집에 머무는 제레미, 제레미가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두 사람이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하는 마르틴, 인류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며 제레미의 죄를 덮어주는 신부, 왜 자신을 동성애자로 보는 건지 유혹하며 다가오는 제레미에게 의문을 느끼는 왈테르…. 이런 인물들로 인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헉' 소리를 내뱉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등장인물들은 자기 욕망에 매우 충실하다. 각기 품고 있던 크고 작은 욕망이나 결핍이 연이어 분출되는데, 이들과 비슷한 마음을 겪어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이런 감정이 이상하게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영화는 얘기한다.
기로디 감독은 "내게 욕망은 삶의 가장 큰 미스터리"라면서 "미스터리를 키워 관객이 의문을 품고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하려 했다. 그것이 욕망을 기록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77회 칸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이 작품은 아리 애스터, 파얄 카파디아, 미겔 고메스, 라두 주데 등 여러 명감독으로부터 호평받았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영화 잡지 카예 뒤 시네마는 "비극과 부조리, 종교적 색채가 공존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묘사했다.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예측할 수 없는 전개와 은밀하게 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극찬했고 2024년 최고의 영화로 '미세리코르디아'를 선정했다.
16일 개봉. 104분.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