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고 다정한 것이 주는 위로…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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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아·안보현 주연…'엑시트' 이상근 감독 6년 만의 신작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강아지와 아기가 뒤엉켜 노는 영상, 판다가 죽순 먹는 영상 같은 걸 자꾸 보게 되는 건 '무해함'이 주는 위로 때문이다.
독한 스트레스와 도파민의 홍수 사이를 오가는 일상에서 순하고 다정한 것은 점점 더 귀해진다. 긴장된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키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속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존재도 그렇다. 회사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신세지만, 누굴 원망하지도 않고 조용히 자기 상처를 보듬는다. 그런 와중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이웃이 도움을 부탁하자 온 마음을 다해 돕는다.
이웃의 사정이라는 것은 다소 황당하다. 조용하고 유순한 선지(임윤아)가 새벽만 되면 악마에 씌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
혼자서 딸을 챙기는 게 버거워진 아버지 장수(성동일)는 듬직하고 착해 보이는 길구에게 아르바이트 겸 선지의 보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길구의 무해함은 선지를 돌보는 역할을 맡으면서 빛을 발한다. 상대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맞춰주는 센스를 타고난 사람 같다. 조금 손해를 보는 상황도 개의치 않고,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감정을 억누르지도 않는다.
물건을 던지고 흙을 파먹으며 위악을 떨던 선지도 길구의 꾸준함과 온순함에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데뷔작 '엑시트'(2019)로 큰 사랑을 받은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가족애와 로맨스, 코미디를 적절히 배합한 이야기에 피식피식 웃다가도 뭉클함이 한 번씩 치고 들어온다.
낮에는 화장기 없는 순한 얼굴에 조곤조곤한 말씨를 쓰는 '낮 선지'로, 새벽엔 화려한 메이크업에 웃음소리까지 표독스러워지는 '밤 선지'로 분한 임윤아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그간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동일의 딸로 나온 유난스러운 캐릭터들 목록에 임윤아는 확실한 존재감으로 이름을 추가했다. 성동일은 육아 난이도가 '극상'인 딸에게 혀를 내두르면서도 속은 따뜻한 아버지 역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어리숙하고 순한 게 꼭 덩치 큰 강아지 같은 길구는 안보현의 '소년미'를 재발견하게 해 준다. 항상 어안이 벙벙한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어리숙해 보이지만, 다정하고 순한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잔잔하게 각인시킨다.
13일 개봉. 112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