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전쟁, 피할 수 없는 씁쓸함…박찬욱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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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신작, 베네치아서 첫선…구직 전쟁 그린 부조리극
인물 간 동질감이 빚어내는 '웃픈' 상황들…다채로운 음악·교차편집 눈길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다 이뤘다."
밝은 햇살이 비추고 꽃잎이 날리는 마당에 아내와 두 아이가 식사를 위해 앉아 있다.
만수(이병헌 분)는 그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장어를 굽고 있다. 널찍한 마당과 이층집,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만수는 만족스러운 삶을 일군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해고의 물결이 만수에게 닥친다. 만수는 '해고는 모가지'라며 생존의 필요성을 항변하지만, 그의 말은 책임자가 떠난 빈자리를 맴돌 뿐이다.
재취업에서 계속 미끄러지고 연체 금액은 쌓이고 자신이 손수 가꾼 집은 처분당할 위기다. 더해지는 모멸감에다가 자신이 이룬 것이 무너져가자 만수는 홀리듯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해고 당한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구직 전쟁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인 신작은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박 감독의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것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이다.
영화는 원작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의 큰 틀을 유지했다. 제지 회사에 다니다가 해고당한 주인공 가장이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잠재적인 경쟁자를 하나씩 제거해간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거짓 구인 광고로 경쟁자의 원서를 받고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도 같다. 다만 주인공의 경쟁자 수는 7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영화는 줄어든 경쟁자 자리에 각 인물의 사연을 풍부하게 덧붙이며 인물 간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구범모(이성민)와 고시조(차승원)는 제지업계의 실직자로 구직 활동을 꾸준히 해나간다는 점에서 만수와 닮은 인물이다. 그들은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는 그들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자기 이마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긍정적인 주문을 되뇌는 모습은 만수와 범모 모두 마찬가지다. 만수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전쟁'은 이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만수가 가질 동질감은 영화 전반에서 묻어나는 코미디에 결을 더하며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을 형성한다. 만수가 동질감을 느끼는 것처럼, 관객 입장에서 만수와 경쟁자는 같은 처지다. 누구를 더 정당화할 여지는 적다. 그런데도 만수는 "어쩔 수가 없다"를 되뇌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부조리한 상태에서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살인과 폭력은 웃음과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박찬욱 감독은 화면 구성, 편집, 소리 등 다양한 장치를 동원하며 영화의 정서를 강화해나간다.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김창완의 '그래 걷자' 등의 가요부터 클래식까지 다채로운 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때로는 소리의 전달이 막히며 '웃픈' 상황을 만들어낸다. 만수와 가족의 모습이 한 화면에서 겹치거나, 교차 편집되는 시퀀스는 만수에게 가해지는 압박감을 드러내며 그의 행동에 설득력을 더한다.
만수는 그를 떠나지 않은 죄책감과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듯, 영화 내내 충치로 괴로워한다. 영화 끝에 이르러 만수의 앓던 이는 빠질 수 있을까.
영화는 다음 달 24일 국내에서 정식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