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어쩔수가없다' 오랜 인연의 결실…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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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서 선보인 신작…"조용필 등 80년대 가요 선곡, 거장 향한 존경심 담아"
"주인공 괴로울수록 흥미…이경미 감독과 협업으로 신경질적인 장면 담겨"
(베네치아=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이 오랜 기간 품고 있던 프로젝트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소설 '액스(THE AX)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지 20년, 영화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과 각본을 쓰며 본격 제작을 추진한 지 16년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박 감독은 '어쩔수가없다' 공식 첫 상영 다음 날인 30일(현지시간) 베네치아 리도섬의 한 호텔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그간의 우여곡절을 돌아보며 영화를 완성한 데 대한 감격을 드러냈다.
"원작 소설을 읽고 판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이미 영화가 만들어졌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좌절했죠."
박 감독이 제작을 추진하던 시점에 앞서 소설 '액스'는 2005년 '액스, 취업에 관한 안내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의 판권도 해당 영화를 연출한 그리스 출신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에게 간 뒤였다.
그의 좌절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를 본 뒤 희망으로 바뀌었다. "영화는 물론 잘 만들고 재미있었지만, 제가 가는 길과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됐어요."
2009년 영화 '박쥐'로 칸영화제를 찾은 박 감독은 가브리스 감독 부부를 만나 리메이크 허락을 받았다. 부인인 미셸 가브라스는 프로듀서를 맡아 캐나다와 미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박 감독이 원하는 만큼의 투자를 받지 못한 것이다. 난항을 겪던 어느 날, 미셸 가브라스의 제안으로 프로젝트는 국내 제작으로 방향을 돌리며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어쩔수가없다'는 실직 가장 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이야기로 탄생했고 제82회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극장을 빌려 가브리스 가족과 시사를 했는데 그분들이 감동하며 좋아해 주셨어요. 저도 그 긴 세월, 2009년부터 시작된 인연이 이렇게 결실을 보게 된 데 대해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소설에서 영화로 옮겨지면서 주인공의 경쟁자 수는 줄고 경쟁자가 지닌 사연은 늘었다.
박 감독은 "(주인공 만수와 경쟁자 간의) 공통점과 연결점을 많이 심어 넣으려 했다"며 "만수가 타깃으로 삼은 경쟁자들이 자신과 비슷해서 (만수가)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은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만수가 경쟁자와 형성한 공감대는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만수의 어려움을 키우며 영화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박 감독은 "주인공이 어렵고 괴로울수록 영화적으로 흥미로워진다. 그것을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각본 작업에 참여한 이경미 감독의 존재는 '어쩔수가없다'가 전작 '헤어질 결심'(2022)과 다른 결을 갖게 한 주요 배경 중 하나다. '친절한 금자씨'(2005)부터 각본 작업을 함께해온 정서경 작가는 이번에 참여하지 않았다.
박 감독은 "비슷한 걸 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항상 이전 영화와 달라지려고 노력한다"며 "(정서경 작가의) 동화적인 면은 사라지고 신경질적인 것들이 이번에 많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랙 코미디의 면모를 강화하는 대사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만수의 기괴한 방식을 예로 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가수 정훈희의 '안개'가 등장했다면, '어쩔수가없다'에는 조용필의 '고추 잠자리', 김창완의 '그래 걷자', 배따라기의 '불 좀 켜주세요'가 나온다. 공통점은 1980년대 가요라는 점이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1970년대 곡을 썼다면, 이번엔 1980년대로 가고 싶었다"며 "우리나라 가요의 위대한 거장들, 천재들의 곡을 써서 (음악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평범한 이웃이라는 점도 이런 가요를 고르게 된 요인이다. 곡들에는 극 중 인물들의 취향이 반영돼 있다. 박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과 친해지게 만들고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거장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 감독의 베네치아영화제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던 2006년 당시를 떠올리며 오랜 기간 영화감독으로 일해 온 데 대한 소회를 들려줬다.
"당시 묵었던 호텔이 문을 닫았더라고요. 그곳은 비스콘티 감독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1971)을 촬영한 곳입니다. 그래서 호텔 곳곳에서 그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영화인들에게 소중한 무대인데 코로나19를 못 견디고 문을 닫았대요. 그곳에 묵을 수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영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부류의 쓸쓸한 감회가 생기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