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호황에도 중소社 경영난…매출 하락·비용 증가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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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급증했는데 음반·음원·행사↓…대형 그룹 외엔 해외 투어도 침체
활동 중단·오디션 재도전 잇달아…"대중문화교류委, K-컬처 마중물 되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회사 명패만 걸어두고 음반 제작을 하지 못하는 기획사가 많아요. 이러다 다 문 닫게 생겼어요."
한 가요 기획사 대표 A씨는 최근 K팝 중소 기획사가 처한 지금의 현실을 가리켜 이같이 말했다.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 그룹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생존을 걱정하는 중소 기획사들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10일 국내 대표 음반 차트인 써클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1∼400위 기준 음반 판매량 가운데 하이브, SM, JYP, YG '빅 4' 기획사 점유율은 54.78%로 절반을 넘겼다.
스트리밍, 다운로드, 배경음악(BGM) 등을 합산한 연간 디지털 차트에서도 1위 에스파 '슈퍼노바'(Supernova)와 2위 투어스(TWS)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등 상위 10위 가운데 7곡이 '빅 4' 소속 가수의 노래였다.
K팝 음반·음원 시장 전체를 놓고 봐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김진우 음악전문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올해 상반기 실물 음반(써클차트 1∼400위 기준) 판매량은 4천248만6천293장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9.0% 감소하고, 같은 기간 음원(써클차트 1∼400위 기준) 이용량 역시 6.4%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A 대표는 "경제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데다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한동안 외부 행사가 급격하게 감소했고, 현재까지도 그 여파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중소 기획사들은 지난 6∼8개월 정도 아예 매출 없이 지낸 곳도 많다"며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위기를 맞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멜론 등 국내 음원 플랫폼 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음원 매출도 이전의 3분의 1토막이 났다"며 "스포티파이나 유튜브뮤직으로 소비자가 옮겨갔다고는 하지만, 이들 외국계 플랫폼에서는 해외 시장을 개척해 놓은 팀들만 성과를 내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음반·음원 매출의 하락을 상쇄할 해외 공연 시장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대형 기획사 소수의 톱스타는 스타디움급 월드투어도 해내지만, 중소 기획사 아이돌 그룹의 해외 투어 모객력은 오히려 내림세다.
유명 아이돌이 소속된 또 다른 가요 기획사 B 대표는 "소속 그룹이 지난해에는 미주 투어를 매진시켰는데, 올해는 절반 정도만 티켓이 팔렸다"며 "또 다른 소속 그룹도 50∼60% 수준으로 티켓이 팔리는 등 공연 시장 성장세도 꺾였다"고 말했다.
동남아 시장에 밝은 공연 프로모터 C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진 톱스타가 아닌 그룹도 해외에서 3천∼4천석 규모 공연을 열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3천석 규모를 기준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적정 출연료는 15만∼18만달러(약 2억1천만∼2억5천만원)인데, 요즘은 20만달러(약 2억8천만원) 넘게 부른다. 이렇게 되면 현지 공연 기획사 입장에서는 굳이 콘서트를 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연료 상승 때문에 티켓 가격이 오르고, 현지 팬들 구매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니 티켓 판매량도 덩달아 감소하는 중"이라며 "팬 서비스를 늘린다든지 하는 타개책이 없는 한 해외 공연 시장 분위기는 냉랭해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매출 하락과 더불어 중소 기획사를 어렵게 하는 요소는 코로나19 이후 가파르게 오른 음반 제작 비용이다. 잘 만든 뮤직비디오 한 편 제작비는 10억원을 훌쩍 웃돌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아우르는 마케팅비 역시 억대가 예사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헤어·메이크업·스타일링 스태프를 해외 투어 등으로 일주일 섭외하려면 1억원은 거뜬히 든다"며 "안무 시안을 받는 데도 3천만원이 드는데, 보통 여러 시안을 섞어서 안무를 완성하니 총 1억원이 넘게 드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 올 한 해에만 2월 위클리, 8월 퍼플키스 등 여러 아이돌 그룹이 활동 종료를 발표했다.
또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와 '여름이었다' 등의 인기곡을 낸 걸그룹 하이키는 이례적으로 데뷔 3년 만에 초이크리에이티브랩으로 소속사를 옮겼는데, 이전 소속사의 경영난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왔다.
베리베리의 강민·계현·동헌, 다크비의 희찬·해리준, 드리핀의 동윤·이협 등 '보이즈 2 플래닛' 같은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리는 '경력직 도전자'도 부쩍 늘었다.
가요계에서는 JYP 설립자인 박진영이 위원장을 맡은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 출범에 기대를 보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K팝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폭넓은 업계 지원에도 나서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은 "박진영 위원장은 아티스트, 댄서, 작사·작곡, 프로듀서, 기획사 등 음악 산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경력을 쌓아 온 음악 시장의 대표적 인물"이라며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음악 산업 내 복잡한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율하고, K팝을 통한 대한민국의 글로벌 브랜딩을 더욱 공고히 하기를 바란다. K-컬처가 국가의 중요한 자산으로 지속해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은 "대중음악계는 공연장 부족, 전문 인력 부재, 각종 규제, 낙후한 인프라 등으로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며 "창작자로서의 감각과 산업 이해도가 높은 박진영 위원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각 분야와 긴밀하게 소통해 세계를 선도하는 K-컬처의 마중물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