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되면 너희가 꼭"…문기남 전 北 축구대표팀 감독 별세
작성자 정보
- 코난티비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45 조회
- 목록
본문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북한 남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뒤 탈북, 한국에서 울산대 감독으로 활약한 문기남(文基男)씨가 지난 9일 오후 10시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0일 전했다. 향년 77세.
1948년 평북 정주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광산업을 하던 부친(문정찬)이 월남하자 외가가 있던 평양에서 자랐다. 1965년 로동자체육단에 들어가 공격수(원톱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고,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졸업했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을 앞세워 상대 진영을 휘저었다.
1965년 북한 U-20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고,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는 축가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불순세력'으로 몰려 량강도로 추방됐다. 이후 복권돼 국가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다가 1981년 국가보위부 5국 소령 및 은파산체육단 선수 겸 감독이 됐다.
1990년 U-20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아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포르투갈) 남북 단일팀 북측 코치로 합류, 8강 토너먼트 진출에 일조했다. 이후 북한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부임, 199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을 만들었다. 1999∼2000년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지만 2000년 AFC 아시안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2000년 9월 리정만과 교체됐다. 이후 북한축구연맹 경기처 상급부원(기술위원)으로 활동했다.
2003년 8월 부인과 자녀 4명을 데리고 탈북한 뒤 2004년 1월 한국으로 귀순했다. 아들 문경근씨는 "아버지는 (국제경기 같은 데 나가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알게 되니까 북한 제도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식들이 이곳에서 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탈북을 생각하고 중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2005년 울산대 감독에 취임, 그해 전국체전에서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지도자상을 받았다. 2009년까지 지휘봉을 잡은 뒤 2010년 울산과학대 여자 축구부 고문으로 위촉됐다. 감독으로서는 세계적인 공격 축구 흐름을 선호했다.
장남(문경민)과 차남도 북한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장남은 귀순 후 한 때 축구 심판으로 활동했다. 장남은 한국에서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차남은 서강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문경근씨는 "아버지는 곧 남북통일이 될 거고, 그때는 저희(자녀들)가 고향에 가서 남북한의 가교로 활약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며 "그래서 한국에서 꼭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여기서 배운 걸 가지고 북한의 정착을 도우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이창실씨와 2남2녀(문경민<개인사업>·문경희·문유진·문경근<서울신문 기자>) 등이 있다.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1호실(10일 오후부터 조문 가능), 발인 12일 오전 5시. ☎ 02-2262-4811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email protected](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