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도, 실력도 그대로인데…무엇이 그들을 야구장으로 이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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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매체 환경에 프로야구 실시간 희소성 커져…SNS 타고 인기 퀀텀점프
정점 찍은 관중몰이…산업화서 배제된 퓨처스리그도 낙수 효과 초점 맞춰야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가 열린 28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앞에서 야구팬들이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2024.10.28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올 시즌 프로야구는 말 그대로 '대박'을 치고 있다.
수도권-비수도권,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경기마다 구름 관중을 모은다.
야구팬들은 좋은 좌석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예매 전쟁을 펼친다.
유료 회원제인 선 예매권을 구매하는 것은 기본. 중고 거래사이트를 통해 수배의 웃돈을 얹어 암표를 구입하거나 매표 대리업체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관중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2025 KBO리그는 역대 최소경기 500만명, 600만명 관중 기록을 차례대로 깨더니 2일엔 1982년 프로야구 태동 후 처음으로 전반기에 관중 700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추세라면 지난해 세웠던 한 시즌 최다 관중(1천88만7천705명) 기록은 물론, 1천200만명 돌파 가능성도 있다.
이쯤 되니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올해 프로야구엔 어떤 매력이 있기에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사실 프로야구 콘텐츠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선수들도 그대로고, 실력도 그대로다.
한국 야구는 오히려 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프리미어12 등 국제무대에서 퇴보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일본 야구와 격차는 더 벌어졌고, 한 수 아래로 평가하던 대만 야구에도 고전한다.
2025 프로야구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상한가를 치고 있는 것일까.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프로야구 역대 최소 경기 700만명 관중 돌파를 앞둔 2일 서울 잠실야구장이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를 찾은 관중들로 가득 차 있다.
프로야구 최소 경기 700만 관중 기록은 지난해 작성된 487경기이며, 이번 시즌은 지난해보다도 훨씬 빠르게 700만 관중을 돌파할 참이다. 2025.7.2 [email protected]
◇ 경쟁 산업이 사라진 프로야구…SNS 만나 '퀀텀 점프'
"경쟁 콘텐츠가 다 사라졌잖아요. 그게 핵심 이유 같아요"
한 수도권 구단 마케팅팀장은 최근 프로야구 인기가 오른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생방송으로 봐야 하는 콘텐츠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과거 프로야구의 경쟁 상대는 많았다.
9시 뉴스, 드라마, 쇼 프로그램 등 각종 TV 콘텐츠와 경쟁했다.
10대들은 저녁 시간에 가요톱텐, 뮤직뱅크를 봤고, 중년들은 드라마 첫사랑, 허준을 봤다.
그러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발달로 대중의 콘텐츠 접근 방식과 시청 환경이 달라지면서 '반드시 생방송으로 봐야 하는' 프로스포츠의 희소성이 커졌다.
프로스포츠의 가치가 커진 건 세계적인 흐름이다.
인기가 떨어지던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반등에 성공해 지난해 역대 최대인 121억 달러(약 16조4천억원)의 수익을 냈다.
경쟁 상대가 사라진 프로야구는 소셜 미디어(SNS)를 만나면서 '퀀텀 점프'를 이뤄냈다.
프로야구를 보고 즐기는 활동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트렌디'한 문화 활동으로 비치면서 젊은 대중을 야구장으로 이끌었다.
최근 프로야구 주 소비층은 SNS 유행을 이끄는 20∼30대 여성이 됐고, 올 시즌엔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온라인 예매사이트 티켓링크가 2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6개 구단 정규시즌 온라인 예매자 성별 비중은 여성 57.8%로 남성(42.2%)을 크게 앞선다.
여성의 예매 비율은 2023년 51.4%, 2024년 56.4%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올해 20∼30대 여성의 예매 비율은 전체 38.3%에 달한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응원 모습을 공유하면서 프로야구 관람 유행을 선도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분석한 관중 자료에서도 20∼30대 여성들의 활동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30대 여성 관중들은 2022년 유니폼, 응원 도구 등 용품 구매 비용으로 20만7천900원을 소비했고 지난해엔 27만3천원을 썼다. 연령별, 성별 분류에서 상승 폭이 가장 크다.
KBO의 한 관계자는 "20~30대 여성들이 SNS를 통해 KBO리그 관련한 콘텐츠를 교류하고 생산하고 있다"며 "최근 프로야구의 성장엔 젊은 여성층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지난해 프로야구 뉴미디어 중계권 협상을 다시 하면서 짧은 경기 영상을 인터넷에서 공유할 수 있도록 저작권을 푼 것도 이러한 문화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부산=연합뉴스) 강선배 기자 =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2024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앞두고 피카츄 그라운드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롯데자이언츠는 22일까지 인기 캐릭터 '포켓몬'과 협업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2025.5.4 [email protected]
◇ 물 들어올 때 노 저은 구단들…빵·포켓몬·하츄핑까지 야구장으로
물론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 추세에는 KBO와 각 구단의 노력도 숨어있다.
KBO와 각 구단 마케팅팀은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팬들을 야구장으로 유인했다.
최근 롯데 자이언츠는 포켓몬스터, KIA 타이거즈는 하츄핑 등 인기 캐릭터와 협업 사업을 펼쳤다.
올 초엔 KBO와 SPC삼립과 협업해 출시한 '크보빵'(KBO빵)이 사흘 만에 100만봉 판매를 돌파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과거 큰 인기를 누렸던 '국찐이빵', '포켓몬빵'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었다.
각 구단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프로야구를 '예능화'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자체 채널은 모두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했고, 정규 직원들로 유튜브 팀을 꾸린 한화는 10개 구단 최초로 구독자 수 45만명을 달성했다.
지방 구단 마케팅팀 관계자는 "협업 사업과 구단 채널 운영은 팀 재정과 직결되진 않지만, 신규 팬 유입에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올 시즌엔 다양한 사업체에서 협업 관련 문의를 하는 등 예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고 전했다.

(전국=연합뉴스) 김도훈 김동민 서대연 손형주 윤관식 조남수 홍기원 기자 = 윗줄 왼쪽부터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서울 잠실야구장, 가운데 줄 왼쪽부터 수원 kt위즈파크, 서울 고척스카이돔, 인천 SSG랜더스파크, 아랫줄 왼쪽부터 부산 사직야구장, 올해 첫선을 보이는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창원 NC파크. 2025.3.19 [email protected]
◇ 야구장 신축 효과가 결정적…야구팬들이 도망가지 않는다
프로야구 인기가 폭발하게 된 본질적인 배경엔 '신축 야구장 효과'가 크다는 분석도 있다.
KBO 총재 어드바이저인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과학대 학장(스포츠경영학과 교수)은 "야구 인기가 커지기 시작할 때 야구장을 새로 지었던 판단이 1천만 관중 시대를 넘어 최고 관중몰이에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2012년과 2013년 프로야구 관중 추이가 신축 야구장 효과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본다.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 효과에 힘입어 1995년 이후 13년 만에 500만 관중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후 프로야구 관중은 해마다 늘었고, 2011년 사상 처음으로 600만 관중을 돌파한 뒤 2012년 715만명 이상의 관중을 모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2013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야구장을 찾은 관중은 600만 명대로 뒷걸음질 쳤고, 10개 구단 체제로 확장한 2015시즌이 되어서야 700만 관중을 회복했다.
경기당 관중 수는 오히려 큰 폭으로 줄었다.
전 교수는 "야구팬들이 국제대회 경기를 시청한 뒤 야구장을 찾았는데,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며 "신규 팬들의 재방문이 일어나지 않아서 관중 수가 후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이어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2014년), 고척스카이돔(2015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2016년), 창원NC파크(2019년) 등 신축구장이 생기면서 관중들의 재방문이 늘었고 관중 증가에 탄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함평=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7일 전남 함평 기아챌린저스필드 실외 야구장에서 번트 수비 훈련 중인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선수들. 2022.2.7 [email protected]
◇ 정점 찍은 프로야구 관중…'그들만의 리그' 2군 산업화에 초점 맞춰야
전용배 교수는 프로야구가 더 성장하기 위해선 '확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프로야구 관중이 더는 늘어날 수 없는 구조인 만큼, 퓨처스(2군)리그를 산업화하는 등 야구 시장 자체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용배 교수는 "현재 프로야구 2군은 산업화와 동떨어져 있다"며 "퓨처스리그도 우수한 경기 관람 환경과 응원 문화를 도입하면 낙수 효과를 누리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의 말처럼 각 구단 2군은 야구팬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대다수 구단은 자가용이 없으면 찾아가기 힘든 지역에 2군 구장을 짓고 육성 위주의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경기 시간대와 관람 환경 등은 야구팬들에게 매우 불편하다.
전용배 교수는 "퓨처스리그를 산업화하기 위해선 접근성이 좋은 지역의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하는 등 각 구단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각 구단 고위층은 당장 구단의 1군 성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KBO도 퓨처스리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구단에 다양한 혜택을 줘야 한다"며 "그래야 프로야구는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BO 고위 관계자도 "퓨처스리그 활성화는 KBO의 숙원 사업"이라며 "구단과 긴밀한 대화로 퓨처스리그의 성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