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과달라하라 곳곳에 '가짜 국가대표 프로필'…알고 보니 실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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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전역 실종자 수만 13만4천명…월드컵 축제 인파 겨냥해 '애타는 호소'
(과달라하라=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언뜻 보기에는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의 프로필 포스터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선수 이름이 있어야 할 포스터 상단에는 스페인어로 '실종자'(Desaparecido)라는 단어가 굵게 글씨로 적혀 있고, 하단에는 실종일과 실종 지역으로 추정되는 날짜와 장소가 적혀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의 눈길을 단 한 번이라도 더 끌기 위해, 월드컵 기간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실종 전단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멕시코 과달라하라.
악명 높은 치안에 대한 우려가 무색하게, 대낮의 도심을 걷다 보면 그런 위험을 직접 체감할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과달라하라=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9일(현지시간) 오후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내에 월드컵 홍보를 위해 마련된 광장에 실종자 전단이 붙어 있다. 2026.6.10 [email protected]
하지만 가로등과 도로 안전봉, 신호등 기둥 할 것 없이 거리 곳곳을 메운 수많은 실종자 전단은 이 도시의 씁쓸한 현실을 짐작게 한다.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기념탑은 이 현실을 가장 뼈저리게 보여주는 곳이다.
본래 1950년대 미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사관생도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소년 영웅의 로터리'지만, 이제 현지인들은 이곳을 '실종자들의 로터리'라 부른다.
마약 카르텔과 얽힌 실종 범죄가 급증하자, 애타는 가족들이 탑 기둥과 벽면 전체를 잃어버린 가족의 전단으로 도배하면서 아예 이름마저 바뀌어 버렸다.
현재 멕시코 전역의 실종자 수는 13만 4천 명을 웃돈다.
특히 과달라하라가 주도인 할리스코주는 전국에서 실종 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되는 지역 중 하나다.
상황이 이렇자 현지 주민들은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몰려드는 월드컵 기간을 이용해, 실종자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합성해 만든 '국가대표 프로필형' 실종자 전단이 그 일환이다.
실종자 가족과 단체들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과달라하라에 마련된 국제축구연맹(FIFA) 팬 페스티벌 행사장과 주요 관광지 주변에 이 '가짜 프로필' 전단을 집중적으로 부착하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과달라하라=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9일(현지시간) 오후 멕시코 과달라하라 시내에 월드컵 포스터 모양의 실종자 전단이 붙어 있다. 2026.6.10 [email protected]
과달라하라 대학교를 졸업한 구스타보(28) 씨는 "실종자 문제는 이미 너무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아는 지인은 4인 가족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한 번 실종되면 살아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0년, 20년 넘게 애타게 찾는 가족들이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당장 시급한 현안이 실종자 문제인 만큼, 이곳에서 월드컵을 개최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고 짚었다.
실제로 EFE 통신에 따르면 할리스코주 실종자 전담 검찰청은 예산 부족으로 올해 인력을 전혀 충원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주 피해자 지원 위원회 역시 1만 6천 건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단 15명의 자문위원이 전담해 추적하고 있는 열악한 실정이다.
과달라하라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우버 기사 미겔(35) 씨는 "주로 어린 소녀들과 젊은 남성들이 타깃이 된다. 그저 학교 가는 길에, 혹은 친구들과 약속하러 나갔다가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 친구 중 한 명은 15살 때 자택에서 납치돼 무려 10년간 카르텔의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가까스로 도망쳤다. 탈출 후 일부러 경찰에 체포돼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